O/S 시간에 숙제를 나누어 받았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열어보니, 누가, 언제 한건지 기억이 안난다..._-_
O/S 시간에 숙제를 나누어 받았다.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열어보니, 누가, 언제 한건지 기억이 안난다..._-_
자네가 있을 곳은 호랑이 배 속이 아닐세.
호랑이의 머리가 되어 밀림을 제패해야하네.
고난은 청춘의 정열이면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청춘은 마음을 따라,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시기이지.
청춘은 다신 오지 않아, 지금이 바로 미래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위치이지.
12년 동안 울타리에 억눌렸으면서, 다시 또 다른 울타리를 벌써부터 찾는 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 O/S 숙제 중에..... -
이 시를 읽고 생각난 첫 느낌은 우울함이다. 이슬비라는 시의 시작어가 말하듯이, 노동자들이 탄압을 받던, 착취를 당하던 60~70년대의 우울한 시대상을 말하려고 하고 있다.
죄 없이 크고 말기만 한 낯선 소년의 눈동자와 나의 만남은 비라는 슬픔의 매개체로 하나가 된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체 서울로 무작정 상경 온 소년의 절박함은 흙과 비로 더러워지고 젖어버린 고구마들의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그 소년이 서울에 올라온 이상, 그는 수많은 노동자속에 파묻힌 일개의 노동자 한명에 불구하다. 시골에서는 각자 사는 곳도 다르고 말투, 개성, 재능이 달랐을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온 이상 ‘서울에 사는 노동자’라는 같은 수식으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라는 축복의 본모습은 모든 사람의 행복이 아닌, 소수의 행복을 위한 다수를 향한 강요일 뿐이다. 그들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서울로 온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행복이 아닌 타인의 행복, 즉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서 올라온 것이다. 분명 눈에 보이는 강요는 없었다. 그러나 몸을 파는 여인들의 사연이 말해주듯이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의한 것임은 분명하다.
선택이란 것은 가진 자들이 주인인 땅 위에서 그리고 가진 자들이 만든 제도 위에서, 그들의 틀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의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다. 가족을 위한 어쩔 수 없이 강요된 희생 그리고 그 희생의 결실은 가족이 아닌, 있는 자들의 바벨탑을 쌓는데 이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한탄 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십년 전부터 제기 되었던 분배의 목소리는 제대로 실현되지도 않은 채, 어느덧 분배란 성장을 막는 악 요소가 되어버렸다. 노동자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것은 무시한 채 자신의 능력으로 키운, 자신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던 사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위기가 터지자, 그렇게 줄기차게 외치던 자신의 능력, 재산이란 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대신, 그들의 재산은 국민 모두의 재산이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지켜야할 존재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우리의 허리띠를 다시 한 번 졸라매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흘린 피와 땀으로 결실을 얻어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단 오늘 만의 일은 아니다. 신동엽 시인이 종로 5가에서 말했듯이, 과거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겠지만, 이젠 갈 수도 없고 오히려 있는 사람들이 고국을 버리고 가는 현실이다. 역사가 토인비가 말하기를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는데, 왜 우리네 역사는 점과 같은 작은 원에서만 돌고 도는 것일까?
좋은 시는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다고 했다. 그 시대의 모습과 어려움과 아픔을 느끼게 해준 이 시를 마음으로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책상위에서 돌아다니는 작은 쥐 한 마리와 씨름하고 있는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의 역사도 작은 점에서 돌고 도는 것인가?
- 문학과 사회, 나의 레포트에서 -
나도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사람에게 순위를 매기고,
그 순위대로 보려는 생각이 들어서 버렸다.
높은 사람은 하늘이 되었고
낮은 사람은 땅이 되어버렸다.
동아리 MT 계획 이야기를 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일인당 만원으로만 잡으면 고기사서 먹는데 떡을 치고 남는다'
떡을 친다?
대체 어디서 온 어원일까?
첫눈에 반했다는 말.
이 말이 사랑의 진실성을 입증해 주는 말이 될 수 있을까?
아무런 경험도 없이 반했다는 것은 운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오직 외모에 의한 직관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닌 본성에 의한 것이란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말이 무척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는 것으로 봐선,
사람은 이성보다는 본성이 우선인 존재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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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수정(정당성 -> 진실성)